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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공] 침대

다람쥐 월터 2016. 6. 21. 17:50
w. 월터




5일가량 퇴짜와 수정을 반복한 끝에 마침내 대표의 니즈에 부합된 곡이 완성됐다. 베이스 좀 더 올려 봐라, 좀 더 하드하게 안 되냐, 브라스 좀 더 써라, 키는 더 낮추는 게 안 낫겠냐, 브릿지가 약하다 등등, 피드백을 가장한 갑질에 시달린 멘탈이 당장에라도 소리 지를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지끈거리는 한쪽 골을 재환은 엄지로 꾹꾹 눌렀다.


"한 큐에 가자."


가이드를 뜨기 위해 부스 안에 들어가 있는 회사 소속 연습생이 재환은 낯설었다. 이제는 X가 된 여자친구에게 줄곧 맡겨왔던 일이었다. 맑은 음색을 가진 그녀는 무명 인디 밴드의 보컬이었다. 오늘은 그러니까, 재환이 여자와 헤어진 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다.


"하다 움직였어? 소리가 왜 이래. 다시 갈게."


균열의 시작은 무명 보컬의 애인이 '무명 프리랜서 PD'에서 '회사 소속의 말단 프로듀서'로 바뀌면서부터였다. 그녀는 변해버린 재환을 용납하지 못했다. 회사에 일상이 매여 버린 것도, 윗대가리 입맛에 맞는 곡만 찍어내는 것도, 자신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자 스튜디오에 처박혀 있는 재환의 태도도, 모두.


"됐어. 넘어가자. LR 뜰게."


재환이 원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가이드였다. 넘길 때 대충 부연설명을 적어 넣으면 될 터였다. 5일 내내 소파에서 잔 턱에 온몸이 뻐근했다. 집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지만 '그 집'은 아니었다.


"입 좀 제대로 맞춰라, 어?"


두 사람이 동거를 결심한 것은 사귄 지 2년이 되던 해였다. 작업에 빠졌다 하면 한 집에 눌러앉아 버리곤 했던 터라, 마침 재환이 졸업한 것을 계기로 살림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그 작은 오피스텔은 많은 것을 꿈꾸며 새로이 시작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낼 생각이 아니었는데. 재환은 짜증스럽게 입가를 쓸었고, 작은 사고는 그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재환의 심기를 상당히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던 연습생이 벌인 실수였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는지 부스 안을 정리하다 재환이 스피커를 끄기도 전에 마이크 선부터 뽑은 것이다. '퍽' 하는 엄청난 소리가 스튜디오 내를 끔찍하게 울렸고, 곧이어 직원들의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거의 울 듯한 얼굴을 한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어린 연습생은 미간을 양껏 구긴 재환이 말없이 나가라 손짓한 후에야 정신없이 부스를 빠져나갔다. 참으로 개같은 일주일을 재환은 견디고 있었다.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곡을 넘긴 시각은 오전 열 시 경이었다. 싼 맛에 계약했던 1층 집의 도어락을 익숙한 동작으로 해제한 재환은 마찬가지로 익숙한 공간으로 피로에 버무려진 몸을 밀어 넣었다. 커튼 사이로 아침 해가 스미고 있었고, 그 빛을 받아 빛나고 있던 것은 작은 원룸의 대부분을 차지한 커다란 침대였다. 그래. 저 빌어먹을 침대.


침대는 커야 한다며 박박 우기는 통에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산 킹사이즈의 침대였다. 구겨진 시트와 반쯤 걸쳐진 이불은 일주일 전의 사태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일주일 전의 분노가 그대로 담겨있는 저 넓디넓은 침대는 마치 재환에게 엿을 날리는 듯했고, 지금의 재환은 그것을 묵인할 수 있는 상태가 못 됐다.


재환은 이 좆같은 침대를 당장 제 눈앞에서 치워야 했다. 신발도 채 벗지 않은 채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재환은 먼저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하는 매트리스부터 옆으로 걷어냈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한쪽 벽에 기대어진 매트리스에선 침대 밑 묵은 먼지와 함께 여자의 향수 냄새가 피어올랐고, 재환은 곰팡이의 포자라도 들이쉰 양 인상을 썼다. 한켠에 우르르 쏟아져 버린 이불에서 풍기는 여자의 체향까지 가세해 재환은 이젠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욕을 씹듯이 뱉어내며 신발장으로 향한 재환은 곧 큼지막한 공구상자 하나를 꺼냈다. 여자와 장을 볼 때 충동적으로 카트에 담았던 물건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곳에까지 배어있는 흔적에 짜증이 치민 재환의 이가 부드득 갈렸다. 상자를 들어 엎듯 해 간신히 찾아낸 전동 드라이버는 어째선지 작동을 하지 않았고, 폭발하듯 그것을 바닥에 집어 던진 손으로 재환은 망치를 쥐었다. 처음엔 이음새를 두들겨 분해하던 것이 나중엔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에 이르렀고, 종국에는 발로 걷어차 대기까지 했다. 그냥 두면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를 것이라 믿는 사람처럼 그렇게 재환은 그것의 해체에 몰두했다.


싸구려 합판의 경도는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게다가 합판이 부서지는 소리는 꽤나 경쾌해서, 재환은 약간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부수는 위치가 침대의 헤드인지 옆구리인지에 따라서도 갈렸고, 내리꽂는 것이 망치인지 발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이 광기 어린 행위에서의 재환의 표정은 요 며칠 동안의 것 중 가장 밝았고, 또 들떠 보였다.


어느새 처참한 몰골을 한, 좀 전까지는 침대였던 그것의 위로 재환은 망치를 던졌다.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군 재환의 모습은 다 타버려 굽어진 성냥과 같았다. 시야에 들어온 발은 부서진 나무 조각이 박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찢어져 버린 낡은 메이커 운동화 역시 여자가 골라 준 것이었다. 헛웃음이 터진 입과 일그러진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재환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4년이 와해된 한복판에서 재환은 제 안의 또 다른 4년을 손바닥 위로 축축하게 쏟아냈다.







쓰레기장에 내다 놓은 매트리스와 침대 틀의 잔해를 바라보는 재환의 모습은 흡사 발이 묶인 사람 같았다. 한참을 서 있던 재환은 문득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었던 손이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잔뜩 구겨진 명함이었다. 가구 디자이너 XXX. 옆집 남자의 것이었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소음 양해를 구하다가 받았다는 것을 재환은 통화 버튼을 누른 후에야 기억해냈다. 연결음이 멎자 남자의 깔끔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환은 잔뜩 잠겨버린 목을 억지로 벌렸다.



"침대 하나만 삽시다."


다시금 목이 메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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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을 찾았읍니다!!! 에버노트에서 불러왔더니 되네요 엉엉어엉ㅠㅠㅠㅜㅜ

근데 줄 간격이 달라서 수정을 하는데 수정해도 안 먹혀... 어디는 먹히고 어디는 안 먹히고... 환장하겠네요 지짜ㅠㄴㅠ

이거는 나중에 수정을 해서 른쪽이를 넣을 수도 있는데 음... 근데 제가 가구 디자인에 관해서 아는 게 없어서 하핫 젠장^ㄴ^

만약에 넣게 되면 학연이로 하고 싶네여 켄엔으로...

그나저나 제목 고자라 제목을 항상 이따위로밖에 못 짓는 나새기... 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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